최명길
최명길
- 1586(선조 19)~1647(인조 25)
- 조선 중기의 문신.
- 본관은 전주. 자는 자겸, 호는 지천.창랑.
- 아버지는 영홍부사 기남이며, 어머니는 참판 유영립의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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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4년(광해군6)에 병조좌랑, 1623년 인조반정에 가담하여 정사공신 1등이 되어 완성부원군에 봉하여졌으며, 이어 이조참판이 되어 비변사 유사당상, 홍문관 부제학, 사한부 대사헌 등을 거쳤다.
1632년 이조판서, 1635년 호조판서, 1636년 병자호란 때, 강화론을 펴 극렬한 비판을 받았다.
1642년 영의정을 지냈으며, 1645년 인조를 보필하다 죽었다.
그런데 그가 심양에 잡혀가서 비록 갇힌 몸이 되었으나 늠름한 태도로 시종일관 비굴한 빛이 없었다.
이때에 김상헌은 그의 늠름한 태도에 “공의 주화가 오로지 나라를 위한 충성에서 비롯한 것임”을 비로소 알고 마음으로 탄복하였다.
그후로 김상헌은 자손들에게 최공 집안과 대대로 세의를 도모하라는 유언까지 남기었다고 전한다.
성리학과 문장에도 뛰어나 일가를 이루었으며, 글씨에 있어서도 동기창제로 이름이 있었다.
저서로는 <지천집> 19권과 <지천주차> 2책 등이 있다.
박천의 지천사에 제향. 시호는 문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