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모습

1920년 잠실리 이미지

1920년 잠실리

잠실리의 마을 이름은 고양군 뚝도면에 속해 자마장(뚝섬)리의 남쪽에 있는데 섬은 두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북안에 연한 것은 신천리, 남안에 연한 것은 잠실리이다. 전에는 자마장리와 연속된 반도였으나 홍수로 인해 북안에 작은 지류가 생겨 섬이 되었다.

1925년 송파리 이미지

1925년 송파리

15대 향시중의 하나인 송파장이 있던 이것은 한강을 오르내리는 송파나루터의 남쪽 언덕에 있었으나 1925년 7월9일 부터 17일 사이에 큰 비가 내려 송파마을과 장터는 유실되고 모래사장과 강줄기로 변해버렸다.

1970년 이전의 잠실지구 이미지

1970년 이전의 잠실지구

1930년대만해도 뽕나무가 무성했으나 1950년대 이후 주민들은 뽕나무를 뽑아내고 모래밭에 배추, 무우, 오이, 호박등의 채소와 꽃을 가꾸며 30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1980년대 이전의 송파나루 공원 이미지

1980년대 이전의 송파나루 공원

1930년대만해도 뽕나무가 무성했으나 1950년대 이후 주민들은 뽕나무를 뽑아내고 모래밭에 배추, 무우, 오이, 호박등의 채소와 꽃을 가꾸며 300여 가구가 살고 있었다.

몽촌토성의 복원전 모습 이미지

몽촌토성의 복원전 모습

1977년대의 몽촌토성 외부에는 성내천을 중심으로 한 지역 일대가 경작지로 이용되고, 성의 동북쪽 외곽 사이에는 [잣나무골] 남문을 중심으로 한 동서 양쪽에는 [몽촌]으로 불리는 자연부락이 있었다.

을축 대홍수때 물에 잠긴 한강변 이미지

을축 대홍수때 물에 잠긴 한강변

1925년 7월 9일부터 12일까지 4일간 서울에 383.7㎜의 큰비가 내려 많은 가옥이 침수되고 이재민 이 생겼다. 이 당시 비가 잠시 그쳐 사람들은 젖은 옷을 말리고 침수된 곳을 매만지고 복구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흘뒤인 7월 15일저녁부터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개부심한다고 생각했으나 집중호우로 변하여 19일까지 5일간 365.2㎜의 강우량을 나타냈다. 이른바 1,2차 홍수로 일컬어지는 을축년 대홍수로 한강인도교의 최고수위가 11.66㎜를 기록했다.

잠실 하중도 물막이 공사 이미지

잠실 하중도 물막이 공사

1971년 4월 15일 양택식 서울시장과 500명의 주민들이 참석한 가운데 잠실도 남동쪽과 송파동 성내천 사이 한강을 막는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그 당시 한강 폭350m. 깊이4m.)

풍납 대홍수때의 현 우일로 이미지

풍납 대홍수때의 현 우일로

풍납동은 한강과 상면하고 있어 항상 수재의 위험을 안고 있는 마을이다. 1925년과 1972년이래 최대의 물난리를 몰고 온때는 1984년 9월 1,2일이었다. 1984년 9월1일 새벽, 상류의 화천, 의암, 춘천, 청평, 소양, 팔당 등 6개댐이 만수위에 육박하자 가두었던 물을 한꺼번에 방류하면서 부터 한강수위가 급격히 높아져 한강주변의 저지대는 물에 잠기기 시작했고, 배수지 범람등으로 침수되기 시작했다. 특히 이중 풍납, 성내, 망원동 등 150개지구, 20,962가구가 침수되었으며 수용 이재민도 85,000여명으로 집계되었다.